한겨레는 한겨레신문(주)에서 발행하는 조간 일간신문의 이름이다.

50억원의 자본금으로 1987년 12월 15일에 신문사를 차렸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와 함께 진보 성향의 언론으로 분류되고 있다.

1987년 대선에 야권이 패배한 뒤 실의에 젖어 있던 국민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입력시간 : 2019-11-08 00:41:26 , 최종수정 : 2019-11-08 00:41:26, 남궁문 기자



출처 :포장부업 : http://www.pojangbuup.com

한겨레의 탄생 역사

 

한겨레는 한겨레신문()에서 발행하는 조간 일간신문의 이름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공덕동 116-25번지)에 위치해 있다. 기본 사시는 민주, 민족, 통일. 조선일보의 보수주의와 중앙일보의 탈이념화와는 달리 한겨레는 진보주의를 고수하면서도 노동자, 농민, 도시영세민을 포함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창간되었고, 체제면에서도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단행함으로써 기존 신문들과 차별성을 보였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와 함께 진보 성향의 언론으로 분류되고 있다.

 

1974년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정권의 통제로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의 기자들 중 일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다. 이 선언 이후 기업들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취소, 그래서 백지로 신문을 찍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조그맣게 동아일보에 응원광고를 내었고, 동아일보 내의 일부 기자들은 이에 큰 감격을 받아 적극적으로 자유 언론 투쟁을 벌이다가 해고되었다.

 


해고당한 기자 130여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대부분 다른 언론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육체노동을 하고, 일부는 사회과학출판사를 차리기도 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신문사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이 때 생활고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결국 긴급조치 위반으로 상당수가 투옥되었으며, 1980년 여름 언론계 정화조치 때도 또 한번의 대규모 강제해직 사태가 일어나 또다시 해직 언론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훗날 한겨레의 창간 멤버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겨레가 운동권과 노조에 우호적 성향을 띄는 한 이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상기의 이유로 리영희 교수와 임채경 창작과비평사 편집고문, 이병주 동아투위 위원장, 정태기 조선투위 위원장 등 네 분이 1987년 여름부터 구상을 하여 과거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다시 뭉치고, 모자란 자본은 67300여 국민들의 자발적 후원 형식인 국민주주제로 채워졌다. 창간의 움직임은 그해 10월부터 낸 창간준비 소식 및 모금운동 광고의 형태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광고에 실린 카피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1987년 대선에 야권이 패배한 뒤 실의에 젖어 있던 국민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모인 50억원의 자본금으로 19871215일에 신문사를 차렸고, 19885151호가 나왔으며 기존의 활판인쇄 대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였으며 한 사람의 주식을 1%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을 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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